▶ごみばこ 2020. 4. 5. 03:01
1차 자캐+자캐: 알려지지 않은 형제 관계, 독점욕과 의존
ㅅㅇ님께서 신청해주셨습니다.



 공백 미포함 7939자.





툭툭.

여자는 창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바깥은 환하고 햇볕이 강했으나, 구름이 껴서는 어쩐지 어두운 날씨였다. 차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 커다란 나뭇가지를 몇 번 곁눈질한 여자는 이유없이 피곤하다고 생각하면서 눈가를 꾹 눌렀다. 화장이 지워지는 것 따위는 알 바 아니었다. 미리 준비한 백합 꽃다발을 제 옆자리에서 집어들자, 아직 생기가 채 가시지 않은 꽃다발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그녀의 손을 적셨다.

달칵. 스스로 열지 않은 차 문이 타인의 손길로 열리고, 걸음을 내면 생소한 광경이었다. 뾰족한 첨탑이 그녀를 반겼고, 예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은 엄숙한 얼굴로 그녀를 맞았다. 성당치고는 약간 작은 듯한 정문을 지나자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발라진 내벽이 빛을 받아 빛났다. 몇몇은 그녀를 알아보는 듯한 시선도 있었으나, 그 시선에는 의아함도 내포되어있었다. 그도 그럴 게 여자는 이 자리에 올 이유가 달리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타인이 어떠한 반응을 보이든 그에 내색하지 않고, 그저 부의록에 단정하게 제 이름을 적었다.

 

리다 셰로티. 그간 몇 편의 영화를 찍었고, 최근에도 영화를 한 편 촬영 중에 있어 간간히 주목을 받는 배우 중 하나. 그녀는 이토록 유명하지 않은 조촐한 연구원 단체 장례식장과는 전혀 무관해보이는 사람이었으나 그녀는 자연스럽게 안으로 걸음을 들였다. 그녀는 명확한 목적성을 가지고 이곳에 왔다.

양 옆으로 의자가 늘어선 본당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멀쩡해보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디 하나 성하지 못한 사람들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하긴, 테러사건이라고 했지. 그 단어를 떠올린 순간 셰로티는 어렵지 않게 다음 것들을 연상할 수 있었다. 폭발음, 부서지는 건물의 조각들, 어쩌면 조각이라고 할 수도 없는 커다란 잔해들… …그리고 피해자들. 셰로티는 그 다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 사이에서 제가 찾는 사람의 얼굴을 볼 것만 같았다.

본당에는 찬송가 비슷한 것이 흐르고 있었으나 분위기만은 거의 정적에 가까웠다. 그 사이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를 찾아 앉고 있었고, 셰로티 또한 얌전히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제단에서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 굳이 표현하자면 방관자 같기도 했고,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것 같기도 했다. 모두가 자리에 앉고 나면 성단소에 앉아있던 신부 중 한 사람이 일어나 제단 앞에 섰다. 모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따위의 진부한 말을 들으면서, 셰로티는 신부의 등 너머에 있을 몇 개의 관을 보려고 애썼다. 그 중 하나는 자신이 마중나와야만 하는 이의 것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고인을 위해 헌화하시겠습니다. 준비가 된 분들은 각자 꽃을 들고 앞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신부의 그 말을 신호로 사람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제단 앞으로 향했다. 장례도우미들이 관의 뚜껑을 열어 망자의 마지막 모습을 조문객에게 보여주었다. 셰로티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려 손 안에 든 꽃다발을 꾹 쥐었으나, 끊임없이 여기에서 이렇게 준비할 꽃다발이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을 지워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몇 번이고 꽃을 바칠 때까지 셰로티는 기다렸다. 사람들이 모두 헌화를 끝낼 즈음이 되어서야 그녀는 몸을 일으켜 걸음을 옮겼다. 제단까지 나아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자신의 것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걸었다. 제단 앞에 멈추어 섰지만 처음부터 그것을 바라볼 수는 없어서 다른 관의 안쪽을 들여다본다. 분을 발라 하얗고 단정한 얼굴을 몇 개 본 뒤에야 셰로티는 제가 찾은 관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다른 관들과 달리 안이 비어있고, 그저 흰 천만이 깔려있는 주인 없는 빈 관을 보며 셰로티는 상대가 남긴 마지막 전언을 떠올렸다.

 

「리다. 이번 주 안에 여기를 떠나게 될 것 같아요.」

 

그러나 당신이 의도한 목적지란 여기가 아니었을 텐데. 그녀는 꽃다발을 꾹 쥐었다. 내려놓으면 인정하게 되었으나 헌화해야만 했다. 그것이 그녀의 목적이었으므로.

 

리다 셰로티는 이미 죽어버린, 자신의 하나 뿐인 오빠를 보기 위해 여기에 왔다.

 

*

 

리다 셰로티는 요컨대, 사랑받고 자란 아이였다. 명문 셰로티 가문의 하나 뿐인 외동딸. 어쩌면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애정과 충성을 거리낌없이 손에 쥘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것마저 리다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은 그녀 평생의 행운이다. 리다 자신도 한 번 본 적 없는,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떴던 언니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부모는 그에게 모든 애정을 바쳤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 리다는 자신의 자리를 차지했고 절대 놓지 않았다. 본디 아이란 자신의 손에 들어온 게 있으면 남에게 쉬이 내어주지 않는 법이었으므로 리다 셰로티는 그런 식으로 자라났다. 부모는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을 리다에게서 찾았지만 리다는 결코 그 욕망을 투영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양친도 리다도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만족했다. 부모는 자신의 애정을 다할 대상을 찾았으며, 리다는 어느 하나 부족함없는 환경에서 지낼 수 있었으므로.

굳이 따지자면 피해자는 다른 곳에 있었다.

 

에이 르벨린으로 말하자면, 그는 언제나 어디론가 떠나기를 어려워하는 인물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 아나티스 셰로티는 어디론가 갈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가 머무르는 곳은 언제나 리다 셰로티의 등 뒤였는데, 애초 그 외의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리다와 아나티스는 쌍둥이였으나, 그것이 두 사람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 동등한 관계라는 뜻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 관계의 주도권은 오롯이 리다에게 주어졌다. 어린 여식을 잃은 부모는 또 다시 여식만을 아낄 뿐이었고, 아나티스는 자연히 부모의 시야 안에 들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는 출생신고마저 하지 않아, 아나티스 셰로티는 살아있으되 존재하지 않는 이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어린 아나티스는 그것이 어떤 문제라거나, 차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아나티스 셰로티는 아나티스 셰로티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리다 셰로티의 형제 되는 이에 그칠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리다가 아나티스의 비호자를 자처한다는 점이었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그것은 비호라기보다도 관리의 영역에 더 가까웠던 것 같지만, 두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문제였다. 아나티스는 리다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고, 리다는 아나티스의 순종을 기꺼워했으므로.

 

아나티스는 대체로 한 치 흠잡을 것 없이 완벽한 리다의 그림자 역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따금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리다는 의도치 않게 아나티스의 숨바꼭질을 해야만 했다. 화초같은 아나티스를 그 누가 신경쓰겠냐만은, 자존감 낮은 아나티스는 가엾게도 겁이 많았고, 야단맞는 일이 생길 것만 같으면 곧잘 저택에서 자취를 감추곤 했다. 저택은 어른들이 돌아다니기에도 충분히 넓었으므로 작정하고 호흡을 감춘 작은 사내아이 하나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본래도 아나티스는 이 저택의 유령과 비슷한 존재였으니 일반 고용인이 아나티스를 찾는 것은 아주 낮은 확률이었다. 그럴 때마다 아나티스를 찾는 것은 리다의 몫으로 돌아왔다.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리다는 그 일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의뢰’를 받은 리다는 걸음소리를 죽이고 아나티스가 숨을 만한 곳을 돌아다니곤 했다. 대개는 아나티스가 ‘좋아하’고 ‘안정을 느끼’는 장소부터 건드리기 시작하는 일이었는데, 어차피 아나티스가 ‘좋아한다’고 여길 만한 장소야 전부 리다와 관련한 것이었으므로 리다에게는 퍽 어렵지 않은 탐문수사였다. 리다가 아나티스의 리본을 손수 골라주곤 했던 본채의 드레스룸, 단 둘이 빠져나와 시간을 보내곤 했던 정원의 커다란 나무 뒤, 리다가 유달리 좋아하는 향을 피워둔 사무실, 그리고 리다가 아나티스에게 준 선물을 보관해두는 창고를 차례로 순회했다. 일반적으로는 이 과정 안에서 아나티스를 찾곤 했지만, 이 중 아무 곳에서도 아나티스의 행방을 알 수 없다면, 리다는 별채로 방향을 돌렸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아나티스를 찾지 못할 때면 그녀는 별채의 다락을 방문했다. 나무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는데, 여간해서는 사람이 잘 방문하지 않는 곳이었기에 들킬 일도 거의 없었다. 리다에게 있어 아나티스를 찾지 못한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건 언제나 이 방의 존재 때문이었다. 리다는 지는 술래가 되지 않았고, 아나티스 스스로도 리다를 지게 두지 않았다. 아나티스는 한 번도 리다의 손바닥 바깥으로 뛰쳐나가지 않았다.

 

다락에는 옷장이 있었다. 아나티스는 마지막에는 언제나 그곳에 숨곤 했다. 리다는 부러 그 앞에 서서 그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부르곤 했다.

 

아나티스, 아나티스.

…….

아나티스 셰로티, 여기에 없어?

…….

내가 찾잖아……. 정말 안 나올 거야? 데리러 왔어.

 

이리 와, ‘아나트’. 그렇게 말하면 아나티스는 말없이 어둠 속에서 옷가지를 헤치고 나와 리다의 앞에 섰다. 겁먹은 강아지 같은 꼴이 리다에게 있어서는 제법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팔을 벌리면 얌전히 다가와 안기고,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는 그 모든 서로의 행위는 불안정에 기반하고 있음이 자명했다. 그래도 애정이었다. 순전한 애정이었다.

아무도 서로에게 말하지 않았으나 그들은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다. 숨바꼭질이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위안이 되는 놀이였다. 아나티스에게는 사라진 자신을 찾아줄 이가 있다는 점에서, 리다에게는 ‘아나트’가 언제나 자신의 손바닥 안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랬다.

리다는 아나티스의 무력함과 연약함을 애정했다. 그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을 때, 자신만이 유일하게 그를 보호하고 두둔할 수 있다는 점이 리다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아나티스가 자신의 것임을 확실히 할 수 있는 모든 때를 리다는 즐거워했다.

그것이 일반적인 애정의 형태가 아님을 안 것은 시간이 좀 더 지난 뒤의 일이었다.

 

*

 

어떤 깨달음은 부재에서 비롯된다. 리다 셰로티는 그것을 증언할 수 있다.

열 살을 조금 넘긴 해에는 처음으로 친족의 장례식을 치뤘다. 어머니의 장례는 생각보다 조촐하게 치루어졌다. 명성에 비해 찾아오는 사람들은 적었으며, 장례식의 분위기도 엄숙하지 못해 어쩐지 산만한 구석이 있었다. 리다는 그 모든 것을 의아하게 여겼다. 분명 그녀가 알고 있는 어머니는 생전에 존경받는 박사이자 연구원이었기에, 주변인의 이러한 대접은 리다에게 있어 정말이지 생소한 종류였다. 가문의 그림자이며 자식의 위치로서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는 아나티스는 그 자리에 없는 게 응당 마땅했으므로 리다는 그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제단에 꽃을 올려놓으면서 부재에 대해 곱씹을 뿐이었다. 아이는 영민했기 때문에, 부재의 결과에 대해 고민했다. 이를 테면 자신에게 돌아올 대우라든가, 위로라든가 하는 것을 계산했다. 리다의 생각대로라면 크게 달라지는 일은 없을 터였다. 단지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였다는 시선을 받게 되겠지, 그 정도.

그러나 모든 사후처리가 마무리되었을 때도 집안은 여전히 조용해지지 않았다. 리다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즈음의 사람들은 모두 아나티스의 처분을 논의해야만 했다. 사고를 일으킨 장본인, 낳아준 은혜를 모르고 어리석은 짓으로 제 어미를 죽인 이에게 반박할 권리는 없었으므로 아나티스는 그 모든 사태 속에서도 관망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나티스는 자신의 처분이 논의되는 동안, 이따금 리다의 손을 잡고 제 엄지로 리다의 손바닥을 문지르곤 했다. 그 손은 무엇을 의미했는가? 리다는 그것이 단지 의지의 종류라고만 생각했다.

꼼짝없이 내쫓길 위기였던 아나티스는 마침 보호자를 자청한 르벨린 박사를 따라갔다. 리다는 일부러 그것을 따라나가지 않았다. 배웅도 하지 않았다. 후회도, 아쉬움도 느끼지 않았고, 느껴선 안 됐다. 아나티스 셰로티든, 에이 르벨린이든 그가 자신의 것임은 틀림없었는데, 고작 이 따위 일로 작별인사를 나누는 행동을 명확히 하는 것은 리다 셰로티에게 꼭 자신의 것을 손 안에서 떠나보내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그러므로 물리적 거리가 벌어졌어도 리다는 아나티스를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모두가 그를 아나티스 셰로티로 부르지 않아도, 리다 셰로티에게만큼은 그는 여전히 사랑스러운 아나트였다. 생각해보면, 애초 리다 셰로티란 인물은 자신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을 신경쓰지 않으므로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리다 셰로티가 애정과 관심 속에서 영화배우로 데뷔하고 입지를 다지는 동안, 공교롭게도 에이 르벨린은 연구원으로서의 진로를 계속 밟아나갔다. 두 사람은 서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내지 않았지만,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 르벨린은 연구로 자신을 증명하는 것을 기쁘게 여겼다. 에이 자신은 단 한 번도 명확하게 의견을 낸 적 없었으나, 그의 주변인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에이 르벨린은 연구에 골몰하는 것을 행복하게 여겼다. 연구 자체에 대한 감상인지, 혹은 그 부수적인 결과에 대한 감상인지는 에이 르벨린 본인만이 알고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리다 셰로티는 기꺼이 그것을 응원했다. 그러면서도 그가 연구와 자신을 저울질하는 것을 못내 즐거워했다. 자신이 아나트에게 특별하다는 것을 깨닫는 매 번의 때를 리다는 기뻐했다…….

이를 테면, 종종 리다가 시간을 내어 에이를 만나러 올 때면, 에이는 어떤 바쁜 일이 있더라도 그녀를 헛걸음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항상 두 사람의 일정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어서 때로는 두 사람이 만나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에이는 리다가 시간을 내었다는 이유만으로 에이는 약간의 손해까지 감수하곤 했다. 그것은 정다운 헌신이면서 위태로운 줄다리기였는데, 리다는 이것을 알 때마다 기뻐하면서도 그의 연구를 방해하고 싶지 않은 감정에 사로잡혔다.

두 사람은 늘 그런 식이었다. 리다는 에이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때로는 무리한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에이는 그것을 곤란해하면서도 가능한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날은 이랬다.

 

아나트, 언제까지 여동생에게 이렇게 쩔쩔맬거야? 이제 어른인데, 슬슬 자립해야지.

 

쩔쩔매는 에이에게 그렇게 굴지 말아보라는 말을 한 것이다.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주문이었다.

 

리다는… 가끔 어려운 걸 권유하네요.

그런 것 치곤 매번 부탁하는 걸 대부분 들어줬잖아. 어떄? 자립이란 건 생각해본 적은 있어?

 

어떠면 떠보는 걸지도 모르고. 에이 르벨린은 곤란한 기색을 지었지만, 리다는 미소지은 채 그 고민하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직 없어요. 그 정도로 무언가를 책임질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고도 생각지 않고, 떠날 만한 이유도 없어서.

언제까지나 연구실에 박혀있을 수는 없잖아. 르벨린 박사는… 아마도 아나트가 원하는 것과 같은 걸 바라지 않을 테니까. 아나트가 정말 원하는 것이 생기면…….

 

누구에게 휘둘리지말고 당당하게 시도할 수 있어야지. 속삭이는 것처럼 흘리는 말. 

에이 르벨린은 자신의 뺨에 다가오는 손길을 밀어내지 않았다. 분명 자립을 요구하고 있는 입인데, 차가운 손바닥은 그를 놔주지 않을 것처럼 뺨을 도닥였다. 에이 르벨린은 그녀의 의중을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일 평생 그녀가 정해둔 범위 바깥으로 벗어난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 때에는 분명 리다가 자신을 밀어낼 때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선을 내리깔고,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는 것뿐이다.

 

원하는 것이 생기고, 더 이상 머무를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된다면, 생각해볼게요.

 

그러나 아나티스 셰로티의 근원은 리다 셰로티에게 기인하고 일을 진대, 머무를 필요가 없어지는 날이 오기야 할까.

그래서 그녀는 에이 르벨린이 한 번도 자신의 곁을 떠날 거라는 가능성을 상정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

 

그러나 아나티스 셰로티가 집안에서 완전히 사라진 날 밤, 리다 셰로티는 자신의 손을 마주 잡은 채 자신의 손바닥을 엄지로 문질렀다.

…아마도 애원이었으리라고 추측할 뿐이다.

어떤 깨달음은 부재에서 비롯된다. 그 날의 리다 셰로티는 그 손을 잡아채 억지부리는 것을 상상했고, 기이한 충동이라고 여기며 잠을 청했다. 어린 날에는 깨닫지 못했으나 리다 셰로티는 이제 와서 그것을 독점욕이라고 명칭한다.

 

*

 

「탐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거든요. 연구소를 떠나는 건 오랜만이라 조금 걱정되지만, 리다가 말한 대로 뭐든 당당하게 도전해야죠.」

 

테러사건은 큰 이슈가 되지 않았다. 세상은 결과를 보여주기 전에 스러지는 것에는 관심두지 않는다. 리다는 그 날의 촬영을 모두 끝마치고 나서야 소식을 확인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이야기였다……. 리다는 방금 벗어두었던 옷을 다시 꿰어입었다가, 현관 앞까지 걸어나갔다가, 다시 소파로 돌아왔다. 주저앉아서 고개를 잠깐 숙였다가, 물기없는 표정으로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지금 당장 리다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그의 소식을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다. 내일도 촬영이 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자 리다는 내일의 불참을 통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어서는 촬영이 조금 더 바쁘지 않았다면, 일찍 끝났다면, 바쁘지 않았다면 따위의 부질없는 감상이 머릿속에서 와르르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장난감이 가득 담겨있던 상자를 내동댕이 친 것처럼, 그 생각들은 쉽게 주워담아지지 않았다.

 

「이제 리다에게 너무 의지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리다만큼은 안 되더라도, 한 사람 몫은 해야 하지 않겠어요.」

 

리다 셰로티는 그러면서도 태연하게 문자를 보냈다. 손가락은 조금도 떨리지 않았고, 형제의 사고 소식을 들은 사람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침착했다. 에이 르벨린은 그런 그녀에게 의지했고, 믿었다. 리다 셰로티는 원래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를 처음 보낼 때에도 그녀는 배웅하지 않았고, 인사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에이 르벨린이 리다 셰로티의 아나트로 존재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두지 않았을 텐데. 네게 인사를 하고, 신경을 기울였을 지도 모르는 일인데.

리다 셰로티는 문자를 보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TV는 테러가 일어난 연구소에서 수색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소식, 피해자의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 그리고 몇 개의 블라인드 처리된 피해자의 신원을 보도했다. 리다 셰로티는 TV를 끄고 현관을 나섰다. 

 

「그러니 리다, 당신 일을 방해하지 않게 조용히 떠날게요. 늦게 이야기하는 건 신경쓰지 않았으면 해서였어요.」

 

아냐, 당신은 내게 말했어야 했다. 미리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난 걸지도 모른다고, 가정형의 과거를 탓한다. 아나트는 리다 셰로티를 한 번도 방해한 적 없었다. 오히려 너무나도 고요했기에 신경쓰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얌전하고 순종적인 그림자에게 방해란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아나트의 심리 상태 따위는 눈치챌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보같은 아나트, 멍청한 아나트. 당신의 리다 셰로티는 당신을 조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면. 

 

*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에이 르벨린의 지인되는 사람입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전화하셨나요?

그 사고에서 살아남으셨다고 들어서요. 아, … (말을 고르는 듯한 짧은 침묵) 에이를, 마지막으로 보셨다고요.

…이야기를 듣고 싶으신 거군요.

네, 탓하려는 건 아닙니다. 마지막에 그 이가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해서요.

르벨린 씨는……

…….

……다른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고 마지막까지 남아있었어요.

…그랬군요.

말렸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이런 일이라도 해야 한다고 했어요. 자기는, 다쳐도… (조금 흐느끼는 음성이 섞인다.) 죽어도 슬퍼할 사람이 없을 테니… 괜찮을 거라고요.

…….

…장례식장에 가고 계신가요.

네, 그래요.

다행이군요.

뭐가요?

에이 씨가 믿으셨던 게 사실이 아니라서요.

 

*

 

각 관 앞에는 몇 개의 꽃다발이 놓여있었는데, 리다가 서 있는 관 앞에는 곷다발이 하나도 놓여있지 않았다. 조문객이 적기 때문에 바랄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도 에이 르벨린을 추모하는 사람의 증거가 시각적으로 인지되지 않는 기분은 생소했다. 그것을 내려다보며 리다 셰로티는 에이 르벨린으로 명명되는 인간의 행동범주를 상상했다. 일반적인 인간보다도 훨씬 좁을 것 같은 그 경계선을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나트는 어릴 적부터 겁이 많고 소극적이었지만 누구보다도 제멋대로였다. 리다 셰로티 외의 사람들에게는 조금의 기회도 주지 않고, 소통해볼 생각도 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그걸로 만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부끄럽지만, 지금이 아니면 못 할 것 같으니까. 보고 싶을 거야, 리다.」

 

너무한 말이야, 아나트. 그런 말은 직접 하지 않으면 의미를 다 하지 못하는데.

하지만 굳이 직접 하지 않았던 이유를 찾자면 자신에게서 나올 것 같았다. 어쩌면 그 선을 그은 건 아나트 자신이 아니라 리다 셰로티 본인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 손은 무엇을 위해 있었을까. 그 때 손을 마주 잡아주었어야 했을까. 이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것을 알아도 리다 셰로티는 가만히 생각했다.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흰 백합 꽃다발을 관 앞에 내려놓는다. 에이 르벨린. 관 앞에 적힌 이의 이름을 읽지만, 헌화받는 이의 자리는 비어있다. 아나티스 셰로티가 꼭 그랬던 것처럼. 비어있는 관을 일별하며 리다 셰로티는 등을 돌렸다. 들리지도 않고 내지 않을 입속말을 무심하게 중얼거린다.

 

잘 자, 아나티스 셰로티. 그 말은 당신에게서 직접 듣고 싶었어.




有機酸/ewe 「ドラッグストア」feat.初音ミク

유튜브 : https://youtu.be/e_MeDe-EeYQ





PSYQUI - ヒステリックナイトガール feat. Such




死期彩 / カゼヒキ
 
 
曲・詩:時雨  動画:しぐれちゃん(@___sigure_chan / mylist/55486961)  歌唱:カゼヒキ(https://kurukuru2suuzi.wixsite.com/ku...
 
 
더보기
 
依然、世界は醜悪で、噎せ返る血と札束の舞踏
이젠 세카이와 슈우아쿠데 무세카에루 치토 사츠타바노 부토오
여전히 세계는 추악해서, 숨막히는 피와 돈다발의 무도
 
君は僕の手を引いた、香水が鼻に付く
키미와 보쿠노 테오 히이타 코오스이가 하나니 츠쿠
너는 내 손을 잡아끌었어, 향수 냄새가 코에 닿아
 
「嗚呼」
아아
아아
 
不貞の眼差し、逃避行、望んだ結末とは違って
후테에노 마나자시 토오히교오 노존다 케츠마츠토와 치갓테
부정한 시선, 도피행, 바랐던 결말과는 달리
 
『現状』を隔離して、夕方の街へ消えてった
이마오 카쿠리시테 유우가타노 마치에 키에텟타
「현상」을 격리해, 저녁의 거리로 사라졌어
 
週末とサイレンの音が近づいて僕を嘲笑う
슈우마츠토 사이렌노 오토가 치카즈이테 보쿠오 아자와라우
주말의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져서 나를 비웃어
 
「終末の…何だっけ?アレは…」思い出す前に跨った
슈우마츠노 난닷케 아레와 오모이다스 마에니 마타갓타
「종말의... 뭐더라? 그건...」 떠올려내기 전에 스쳐지나가
 
「『それから』は考えないで、今だけは私だけを見て?
소레카라 와 칸가에나이데 이마다케와 와타시다케오 미테
「그리고」는 생각하지마, 지금만큼은 나만을 봐 줘?
 
指を這わせた肢体の先、ぎゅっと抱き絞め殺してよ」
유비오 하와세타 시타이노 사키, 귯토 다키시메 코로시테요!
손가락을 뻗은 지체(;팔다리, 수족, 사지)의 앞에서, 꾹 안아서 죽여줘!
 
髪をかき上げる仕草、初恋のあの子によく似てた
카미오 카키아게루 시구사 하츠코이노 아노 코니 요쿠 니테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는 방법, 첫사랑의 그 애와 제법 닮았어
 
歪な獣慾が「咬み殺せ」と耳元で鳴く
이비츠나 주우요쿠가 카미코로세 토 미미모토데 나쿠
일그러진 욕망(;수욕)이, 「물어 죽여」라고 귓가에 울려
 
貞操の死期を悟っては、牙を向く夜の歓楽街
테에소오노 시키오 사톳테와 키바오 무쿠 요루노 칸라쿠가이
정조의 죽을 때를 깨닫고는, 이를 세운 밤의 향락가
 
きっと終末の世界では君と僕だけが幸せで
킷토 슈우마츠노 세카이데와 키미토 보쿠다케가 시아와세데
분명 종말의 세계에서는 너와 나만이 행복해서
 
「幸せかもしれないけど、でも、それは気持ち良いだけ」
시아와세카모 시레나이케도 데모 소레와 키모치이이다케
「행복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건 기분이 좋을 뿐이야」
 
君は笑って首を傾げ、ちょっと溜息を吐き出した
키미와 와랏테 쿠비오 카시게 춋토 타메이키오 하키다시타
너는 웃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금 한숨을 뱉었어
 
薄暗い部屋の明かり
우스구라이 헤야노 아카리
어슴푸레한 방의 불빛
 
窓に映る無粋な夜景
마도니 우츠루 부스이나 야케에
창문에 비치는 멋없는 야경
 
「次はちゃんとやれるように」そう願いながら押し倒す
츠기와 찬토 야레루요오니 소오네가이나가라 오시타오스
「다음에는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그렇게 바라면서 밀어넘어뜨려
 
「今だけは、今だけは私だけを見て?果てる瞬間の私を見て」
이마다케와 이마다케와 와타시다케오미테 하테루 슌칸노 와타시오 미테
지금만큼은, 지금만큼은 나만을 봐 줘? 끝나가는 순간의 나를 봐 줘
 
「愛を知らない僕だけれど、それに似た『何か』を歌う」
아이오 시라나이 보쿠다케레도 소레니 니타 나니카오 우타우
사랑을 모르는 나라도, 그것을 닮은 「무언가」를 노래해
 
愛の形を教えてくれ、歪な愛のステップ踏んで
아이노 카타치오 오시에테쿠레 이비츠나 아이노 스텟푸 훈데
사랑의 형태를 알려줘, 일그러진 사랑의 스텝을 밟아
 
呻く様に謝罪をする
우메쿠요오니 샤자이오 스루
신음하듯이 사죄해
 
死期を彩る花が咲く
시키오 이로도루 하나가 사쿠
죽을 때를 물들이는 꽃이 피어